강의하기가 갈수록 두려워지는 이유

한 나라에 10명의 청중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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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에 10명의 청중이 있고, 각각의 일원은 잘하는 게 최소한 1개씩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실 누구에게나 한 가지 이상 장점은 있으니까. 그리고 그 청중을 편의상 1부터 10까지 번호로 매겨보자. 강사는 이 가운데 5번까지의 장점을 뽑아 통합하거나 융합해서 강의를 할 것이다. 그런데 정작 대입하지 못한 나머지 5개가 존재한다.

그걸 미처 알지 못한 채, 마치 그게 전부인 양 ‘가르친다’. 그러면 나머지 6~10번까지의 청강자는 그게 틀렸거나 옳지 않다고 할 것이다. 나중에 6번이 가진 장점이 1번이 가진 장점보다 고도화된 장점이거나 이전 프레임이 바뀔만한 색다른 장점일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렇다면 이전에 했던 강의는 부분적으로 혹은 전부 잘못 조합된 지식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강사는 그나마 5개의 정보를 취합한 것이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다고 자위할 것인가. 아니면 10개의 지식을 다 채운 후에 강의해야 할 것인가. 전자의 경우, 자칫 오류를 정답인 양 전달할 여지가 있어서 위험하다. 하지만 후자의 강사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1.5Kg도 안 되는 뇌 하나로 ‘세상의 모든 지식’을 기록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고 전자를 정당화하기도 어렵다. 자칫 청강자 가운데는 그 오류로 인해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을테니까…강의가 혹은 글이 갈수록 부끄럽고 두려워지는 이유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