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의사간 분쟁을 보고

아빠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는 것

0

나에게는 딸이 둘 있습니다. 어느 날, 고등학생인 작은 딸이 힙합 청바지를 입고 나타났습니다. 엄마는 “불량해 보인다.”며 야단을 쳤습니다. 나도 별로 맘에는 안 들었지만 일단 엄마가 야단쳤으니 두고 보기로 했습니다. 어느 날인가 비가 많이 오는 날, 일이 터졌습니다. 통이 넓은 헐렁한 청바지를 길게 늘어뜨려 입고 들어온 딸이 현관에 들어서자, 엄마는 크게 호통을 쳤습니다. “비오는 날, 그런 옷을 입고 들어오면 마루가 온전하겠니?”

결과는 큰 다툼으로 번졌습니다. 그냥 힙합청바지만 가지고 얘기했으면 큰 싸움이 안됐을텐데 그동안 쌓인 불만들이 함께 터져 나온겁니다. “엄마는 내 생각을 이해하려는 맘이 없어”, “고3이라고 죽어지내는데 지가 무슨 벼슬이나 하는 줄 알고..” 등등

가만히 들으니 양쪽 입장이 이해가 됐습니다. 하지만 당장 딸 편을 들자니 엄마가 권위를 잃을 것 같고, 엄마 편을 들자니 딸들이 삐뚤어질까봐 염려가 됐습니다. 그래서 조용히 큰 딸에게 물었지요. “너는 어떻게 생각해?” “아빠, 나는 동생 의견에 공감해. 저 때는 유행에 민감하잖아. 엄마가 이해해줘야지. 저러다 말거야”

나는 우는 딸을 데리고 나가 조용히 한강변을 걸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나란히. 그리고 한 30분쯤 걸었을 때, 딸이 먼저 말을 걸어옵니다.

“아빠, 내가 오늘 좀 과했지?”

“그렇게 생각 해?”

“응, 엄마도 나를 염려해서 그런건데…”

“그래, 엄마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데… 공부 잘하지, 딴 짓 안하지, 늘 엄마 친구들한테 자랑하더라”

“그랬어? 아빠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아니야, 네 잘못도 아니야. 서로가 상대 입장에서 생각했으면 아무 일도 아닌거였어. 이제 엄마 맘 이해되지? 지금 중요한 시기인데 네가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할까봐 그런다는거.”

“예, 알아요 아빠. 늦었어요 얼른 집에 가요.”

나는 가장으로서 일찍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아빠는 최후의 보루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일 엄마와 딸이 싸우기 전에 아빠가 먼저 야단을 치면 엄마가 중재에 나서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아빠는 권위를 잃게 됩니다. 물론 아빠 편을 들 수는 있지만 앞서 우려한대로 아이들이 비뚫어질 수도 있습니다.

언뜻 생각하면 부모 중 누군가가 자식과 다투면 다른 부모가 중재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권위를 잃은 아빠는 그런 위치에서 멀어지게 됩니다. 결국 아빠는 일꾼으로 전락하고 가정의 행복은 물건너가게 되죠.

그래서 자식이 아빠와 싸워서 사이가 나빠지면 그 가정의 평화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늘 중심을 잡고 중재할 기능이 약해지기 때문이지요. 마지막에 나서서 대화로 해결하면 신뢰가 쌓여서 그 다음에 일어날 문제도 쉽게 중심을 잡을 수 있습니다.

요즘 청와대, 복지부와 의사들간 분쟁을 보면서 문득 드는 옛날생각이었습니다. ^^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