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존엄이 사라지고 있다

건강정보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개인정보를 갖고 있다

0

구글이 심박수 모니터링 기능을 갖춘 피트니스트래커 ‘핏빗(Fitbit)’을 2019년 말에 인수했다. 핏빗은 심장 건강, 스트레스 관리, 피부온도 변화 측정 등을 쉽게 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을 탑재한 스마트워치다. 인수 금액은 무려 21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2조3000억원에 이른다.

M&A당시, 제임스 박 핏빗 공동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핏빗 사용자 건강 관련 데이터는 구글 광고에 사용되지 않을 것”이라며 “핏빗 사용자는 원하는 피트니스, 건강, 라이프스타일 앱을 핏빗 계정에 연결해 사용할 수 있다”고 ‘굳이’ 강조했다.

왜 그랬을까? 핏빗이 축적한 사용자 건강관리 데이터가 구글 광고 등에 남용될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핏빗은 100개 이상 국가에서 1억2000만대가 넘는 제품이 판매했고, 활성 사용자는 2900만명에 이른다. 쉽게 말해 우리의 건강정보를 수집해 광고에 활용하려는 시도다.

구글이 가진 정보는 실로 방대하고 다양하다. 건강정보를 제외하고 거의 모든 개인정보를 갖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누구와 잘 어울리고, 어디를 주로 다니며, 무엇을 구매하는지 등 우리의 일상 전반이 거의 구글 손안에 들어있다. 쉽게 말하면 나의 아바타가 구글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여기에 건강정보까지 가진다면 그야말로 없는게 없는 개인정보백화점이 되는 셈이다.

비단 구글만일까? 우리가 자주 쓰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물론이고 스넵챗,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이들 플랫폼에는 구글처럼 우리를 하나하나 분석해 가고 있다. 몇시에 자고, 몇시에 일어나며, 가장 먼저 접근하는 정보가 무엇인지, 그리고 무엇이 필요한지 조차 모두 알고 있다.

만일 내가 여행을 가려고 루앙프라방을 검색했다면, 곧바로 비행기 예약사이트로 안내하고, 나아가 배낭이나 해외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을 제안한다. 만일 내가 페북에서 여성을 친구로 신청했다면 비슷한 타입의 여성친구를 추천해 연결을 강요한다. 그 뿐 아니다. 누군가에게 내 글을 홍보하려고 태그를 걸었다면 그와 관련된 글과 그런 글을 쓰는 친구를 자동으로 띄워준다.

이로인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두가지 문제에 노출된다. 그 하나는 페이스북이 만들어 놓은 정체성으로 이동한다는 점이다. 내가가진 본연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나 아닌 나’에 맞춰진 성향으로 바뀐다는 뜻이다. 즉, SNS가 추천을 반복적으로 해 주면, 그게 내 정체성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다른 하나는 내가 이들 플랫폼의 상품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 상품이란 내가 그 대가를 지불하고 구매하는 물상이다. 그런데 플랫폼에서는 나를 광고주들에게 노출시켜 광고주의 상품으로 팔아먹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두가지 문제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이동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목적 달성을 위해 플랫폼은 나를 추적해 최대한 정교한 아바타를 광고주들에게 보여주고 사라고 한다. 인간이 선물로 거래되는 시장이 되는 셈이다. 여기서 선물(先物, futures contract)이란 ‘표준화되어 있는 상품을 미리 결정된 가격으로 미래 일정시점에 인도·인수할 것을 약정한 거래’를 말한다. 나를 광고주에게 팔아서 플랫폼은 이득을 챙기는 구조다.

내가 무심코 누르는 ‘좋아요’가 76개만 있으면 내 성향을 알아 차리고, 360개만 있으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알아 버린다. 그야말로 감시자본주의 사회가 된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좋아요’가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원래 ‘좋아요’는 내 글이나 사진에 동의하고 응원하는 사람들이 누른다.

그런데 ‘좋아요’ 숫자가 적으면 더 받기 위해 더욱 과감한 노출을 한다. 그래도 그 수가 늘지않으면 우울증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페이스북이 활성화된 시점에 미국 청소년들의 우울증은 크게 늘고 있다. 2010년과 비교해서 자살율은 무려 70%나 증가했고, 한 햇동안 자해로 인해 앰블런스가 출동하는 사례가 10만건이 넘는다. 이는 SNS 사용량과 비례한다. 결국 ‘좋아요’가 오히려 우울증을 유발하는 셈이다.

이는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져 우리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진실이 무엇인지, 기준과 규범이 무엇인지조차 스스로 가늠하기 어렵게된다. 모든 세대가 불안해하고 우울해 하면서 점점 ‘중심없는 세상’으로 빠져들어간다는 의미다. 요즘 혼란스러운 사회문제도 이런 연유에서 비롯된다. 더 강하게 표현하면 ‘세상이 미처 돌아가는 것’이다.

곧 다가올 선거판을 겪게되면 이러한 생각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이벤트와 거짓뉴스(fake news)가 승리할 가능성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정보를 더 많이, 채널을 더 많이 가진 권력이 승리하게 될 것은 자명해서다. 사용자를 얼마든지 유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요즘 세태를 보면서 “앞으로 과연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에 대해 회의적인 생각이 든다. 아니 그런 삶이 불가능 할 것으로 본다. 감시와 페이크가 난무하는… 인간 존엄이 사라질 세상을 앞에 두고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대해 사색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