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판기 사업의 진실

자판기 시장은 기존 자판기에 인공지능을 통합한 소위 AI기반 자판기가 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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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질소득 감소와 코로나 영향으로 자동판매기 사업에 관심을 갖는 직장인들이 부쩍 늘었다. 검색엔진에서 ‘자판기사업’을 치면 ‘1천만 원 투자로 50만원 수익’, ‘직장인 부업으로 최고’같은 글이 따라 올라온다. 어느 유튜버는 ‘절대로 망하지 않는 자판기사업’이라고 소개하기도 하고, 크라우드펀딩으로 300만원 자판기를 예약하는 사람들도 꽤 있다.

이러한 흐름을 타고 유통업체에서도 전통적인 자판기 모델을 넘어 AI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자판기를 앞 다퉈 내 놓고 있다. 이용자에게는 개인화, 자동화를 통해 쇼핑 편익을 제공하고, 운영자에게는 운영 용이성을 제안하여 프론트 엔드(Front end) 시장을 선점하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일단 해외 사례를 보자. 최근 ‘레이즈홀딩스(Reyes Holdings)’는 하이베리(HIVERY)와 제휴해 개발한 AI기반 자동판매기를 론칭해서 업계의 관심을 끌었다. 1976년에 설립된 ‘Reyes Holdings’는 미국에서 가장 큰 맥주 유통업체로 코카콜라와 맥도널드 등 글로벌 기업의 유통을 맡고 있고, 하이베리(HIVERY)는 인공지능 자판기를 개발하는 선도업체다. 특히 하이베리는 호주국립과학원(CSIRO) 출신 과학자들이 모여 2015년에 창업한 AI전문기업으로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소매혁명을 주도할 기술개발에 주력하는 스타트업이다.

2020년에는 러시아 유기농 식품 소매체인 ‘Vkusvill’이 모스크바 아파트단지에 AI기반 유기농 자판기를 설치했다고 발표했다. 70여종의 자사 제품을 지역 소비자 특성에 맞춰 판매하는 전략이다. 특히 ‘그 지역 생산식품을 그 지역에서 판매하는’ 이른바 로컬푸드를 지향한다는 가치가 높게 평가돼 암스테르담 등 유럽 여러 도시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 러시아 식품유통업체가 유럽에 진출한 전례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모스크바에서 오랫동안 유통업을 하고 있는 필자의 지인, 드미트리 구보브스키(Дмитрий Гудовских)는 유기농 식료품 소매체인 ‘Vkusvill’의 성공요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창업자 크리벤코(Krivenko)는 기존 슈퍼마켓들이 유통기한을 속이는 사례를 보고, “매주 금요일에 농장에 주문해서 월요일에 납품받아 당일에 전량 판매하는 소매전략이 소비자의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진정성과 사회적가치가 주택가 자판기사업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인도 스타트업 브라흐마베다(Brahmaveda)도 2020년 7월, 아유르베다(Ayurveda) 음료 자판기를 출시했다. 이 자판기는 아유르베다 원료를 칵테일, 달임 즙, 주스 등 원하는 형태로 내려받는 세계 최초의 즉석 맞춤음료 자판기다. 아유르베다는 ‘생활의 과학’이라는 산스크리트어로 인도에서 5천년 이상 의학체계로 활용돼 왔다.이 자판기는 미리 내려 받은 앱(App)에 의해 활성화 되고, AI로 구동되는 구조다.

그런가하면 일본의 ‘Yakult Honsha’는 이용자에게 매력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AI기반 자판기를 선보였다. 이 자판기는 고객이 일본어를 배우면 음료로 보상하여 사용자 참여를 높이는 전략이다. 그 외에도 상하이의 DeepBlue Technology, 인도의 ThinkPalm Technologies, 호주의 Red Analytics 등이 자판기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은 얼굴인식 기능을 탑재하거나 사용 시각과 날씨정보 등을 바탕으로 이용자에게 최적의 상품을 추천해 주기도 한다.

언급한 해외사례들은 각기 다른 차별화 전략을 보여준다. ‘레이즈홀딩스’는 코카콜라 상품에 고도화된 기술을 조합해 적용하고 있고, ‘Vkusvill’은 로컬푸드에, 그리고 ‘브라흐마베다’는 고대 치료법과 현대기술의 조합을 차별화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다. 다만 이들 모두가 인공지능(AI)을 기반으로 한 자판기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렇듯 자판기 시장은 기존 자판기에 인공지능을 통합한 소위 AI기반 자판기가 주도하고 있다.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여 공간 대비 판매 비율을 최적화하여 판매량을 늘리고 투자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략이다.

이러한 흐름에도 불구하고 자판기 사업은 몇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편의점과의 경쟁이다. 자판기가 활성화된 배경은 24시간 이용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이지만 편의점의 확산으로 그 효과가 반감됐다. 구색을 맞추기 어렵다는 점도 그렇다. 실제로 자판기 대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2000년에 560만대였던 자판기가 2019년에는 450만대로 계속 줄고 있다.

이런 문제로 인해 국내 자판기 시장은 여전히 커피, 음료와 같은 고전적인 자판기가 제한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최근에 샌드위치나 패스트리 같은 스넥 자판기가 엘리베이터형으로 출시되기도 했고, 여행자를 위한 속옷 자판기, 중고명품 자판기 나왔지만 이벤트성으로 그칠 가능성이 커서 수익을 담보하기는 어렵다.

설사 가능성이 있다고 할지라도 입지(location), 즉 설치장소 확보가 걸림돌이다. 자판기를 외부에 설치하면 도난이나 파손 등이 빈번해서 내부에 두어야한다. 이 경우, 기본적으로 10층이상, 200명 정도의 근로자가 상주하는 곳이어야 채산성이 나온다. 하지만 이런 곳은 내부에서 직접 운영하기 때문에 입점이 어렵다. 외부인에게 오픈하기도 하지만 이 경우, 매출의 40~50%를 요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어서 수익을 내기가 쉽지않다.

또한 자판기는 최소한 5대 이상 운영해야 그나마 노력한 대가를 얻을 수 있다. 입지를 잘 잡은 음료 자판기라도 월 20~30만원을 넘지 않기 때문이다. 한가지 효과적인 방법은 공공기관 입찰에 참여하는 방법이다. 국.공립공원이나 지자체 시설관리공단 등의 입찰공고를 참고하면 좋다. 다만 낙찰되더라도 설치수량에 따른 자판기 구입대금과 관리에 대한 부담은 각오해야 한다.

또다른 방법은 자판기를 직접 구입해서 운영하는 것보다 임대해서 운영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장소는 점포, 쇼핑몰 등 민간사업장이 되겠다. 임대료는 주로 매출의 30%를 요구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다. 그래서 자판기 사업을 ‘땅따먹기 전쟁’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이러한 접근방법에도 불구하고 자판기사업은 그리 녹녹치 않다. 위에 사례로 든 해외기업들은 대부분 직영이어서 개인이 끼어들 여지가 없고, 일부 소규모 유통업체들은 기기판매가 목적이기 때문에 계약 이후 운영에 대해서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는다는 점도 참고하면 좋다.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장/KB국민은행 경영자문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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