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럽다’는 요즘 세태

‘선택적’이라는 말이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운 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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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혼란스럽다”고 한다. 과거와 다르게 ‘선택적’이라는 말이 이제 너무나 자연스러운 단어가 됐다. 나도 그렇다. 기준과 가치가 흔들리고, 세상이 어디로 가려고 그러는지 감을 잡기가 어렵다. 적응해 보려고 해도 어디서 중심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다. 나름대로 이해해 보려고 요즘 노력을 많이했다.

이러한 현상은 어디서 온 것일까? 그나마 흐름을 알게되면 내마음이 좀 편해질 것 같아서 애써 보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놈의 코로나가 나를 집에 가두는 바람에 다큐멘터리를 여러편 보게됐다. 그런데 그 안에 답이 들어있었다. 다음은 여러 영화에서 얻은 결론이다. 나름 이해하고 나니 조금 편해졌다.

영화 ‘콘텍트’를 보면 ‘사파이어-워프 가설’이 나온다. 문화인류학자가 이런 말을 한다. “사용하는 언어가 생각하는 방식을 결정하고, 그에 따라 사물을 보는 시각도 바뀐다.”는 가설이다. 그렇다. 요즘은 그룹에 따라 사용하는 언어가 제각각이다.

‘토착왜구’라는 언어를 쓰는 그룹과 ‘빨갱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그룹이 다르다. ‘일베’, ‘기레기’, ‘적폐’ 등의 단어를 쓰는 사람들은 금방 어느 편인지 안다. 단어하나로 상대의 사상을 알아버리는 신통력이 생기게 됐다. 이런 일방의 언어를 자주 듣게되면 그게 하나의 그룹 언어로 굳어지는 것 같다.

언급한 ‘콘텍트’에서도 “언어는 문명의 초석이자, 사람을 묶어주는 끈이며, 모든 분쟁의 무기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그래서 일방집단의 편향된 언어로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고, 그곳에서 통용되는 규칙을 만드는 것 같다. 그런데 그 규칙이 중도에서 보면 가당치 않은 억지가 대부분이다.

영화 ‘페이스북’에서 그 사례를 볼 수 있었다. 하버드생인 ‘저커버그’는 새벽4시에 하버드 기숙사 7개동을 해킹해 얻은 여학생 사진을 웹에 올려서 얼짱투표를 하게 했다. 2시간만에 2만2천명이 넘게 조회하면서 트레픽 과부화로 서버가 다운된다.

다음날, 교무처에서 여학생 사진을 해킹한 문제를 심리하는 위원회가 열린다. 이 자리에서 저커버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긴다. “저의 해킹은 오히려 우리 대학 네트워크 보안이 취약하다는걸 확인시켜준 공로라고 생각합니다.” 저만의 언어로, 저만의 선택적 해석을 내린다. 이 친구의 언행을 보면서 나중에 또 다른 트럼프모델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본론과 무관하게 이영화에서 얻은 인사이트 하나. 룸메이트가 삽시간에 접속자 수가 많은 이유를 묻자, “단시간에 많이 들어온건 여자들이 예뻐서가 아니야. 아는 여자들이어서인거지.” 플랫폼 사업자들이 참고하면 좋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다큐영화 ‘데이비드게일’에서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하버드대 교수는 강의중에 이런 해석을 남긴다. “환상은 부재해야 해. 이루고 나면 더 이상 원하지 않기 때문이지.” 이른바 ‘라캉’의 이론이다. 일반적으로 권력자는 대중의 환상을 제안한다. 단기에 이룰수 없는 환상. 그래야만 추종자들이 그 환상을 좆아 지속적인 팬이 된다. 이루고 나면 허황된 꿈인지 알게 돼서 이탈할지도 모르니까…

영화 ‘빅쇼트’에서는 또 이런 말이 나온다. “곤경에 빠지는건 뭔가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다르게 해석하면 “팬덤이 열광하는 것은 뭔가 확실히 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즉, 그들만의 언어로 반복적으로 듣게되면 그게 진실이되는 것이다.

“진실이 없다면 진실이라고  주장하는게 진실”인 것으로 포장하기도 한다. 허리에 매는 허리띠를 목에 매는 걸로 연출하면 집단최면에 걸린 이들이 뉴노멀 규칙이라 우긴다. 퍼즐조각 맞추듯이 꼬아서 설명해야 간신히 들어맞는 논리는 그냥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팬덤은 어떻게 형성되는가? 이 의문은 다큐영화 ‘히틀러’에서 찾을 수 있었다. 연출의 달인 히틀러는 연출을 통해 개인의 사고를 무력화한다, 개인은 한번 선동에 휩쓸리면 자신보다 전체를 우선하게된다. 그 중심에 연출이 있다. 연출을 통해 가난극복에 대한 이론적 대안은 없지만 흥밋거리 이벤트로 이들의 관심을 끌어 빈곤층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히틀러의 특징은 문제에 대한 이해나 설득보다는 소속감으로 보상해 준다. 배분정책은 소속감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수단이다. 위기를 악화시켜 자신의 등판기회를 찾는다는 점도 독재자 히틀러의 전략중 하나다. 미국 대공황 여파로 일자리가 궁해지자 히틀러는 아우토반 건설에 착수한다. 역시 일자리 창출은 토목이 최고인거지. 코로나를 이용한 각국의 정치도 이런 류가 아닐까 싶다.

영화 ‘세븐’을 통해 다음으로 넘어가 보자. 이 영화에서는 이런 대사를 들을 수 있다. “도시사람들은 남들에게 무관심하지. 강간을 당할때도 도와달라고하면 아무도 안와. 불이야 소리질러야 나오지…” 일반적으로 일상에 충실한 중도파는 대체로 팬덤문화에 무관심하다. 바로 이런 심리를 건드려서 팬덤에 합류하게 만드는 것 같다. 광기어린 언어도 중도를 공격하지는 않는다. 정당은 51에 선착하는 쪽이 승리하게 될테니까. 결국 선거는 51을 두고 싸우는 게임이니까.

요즘은 이런 저런 법을 밥먹듯이 만든다. 뭐 하나 맘에 안드는 결과가 나오면 그걸 못하게 하는 법을 발의한다. 정상두뇌로는 도저히 이해 안되는 수작들이다. ‘세븐’에서는 또 이런 말이 나온다. “일해서 돈버는 것보다 훔치는게 쉽고, 아이를 사랑으로 가르치는것보다 때려서 가르치는게 더쉽지.” 타협보다 강제하면 훨씬 쉬워서일까? 토끼몰이를 해보았는가? 우르르 달려들어 쫒으면 도망가는 토끼를 보고 쾌락을 느끼는거다. 토끼는 생명의 위협으로 죽기살기로 뛰어가는데…

그렇다면 팬덤, 이른바 콘트리트 지지층은 어떻게 유지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아미끼리 맞장구 쳐주니까 떠나질 못한다. 한줄 댓글에도 다들 우루루 달려들어 환호성을 지른다. 외로운 그에게 관심을 보여주니까 그곳을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언급한 다큐 ‘데이비드게일’에서 나오는 대사로 결론을 내고 싶다. “어떤 쎈놈은 밤새 몇 번 할건지 다투다가 날샜대” “재수없으면 찍히는 과속단속 카메라로 생각하지.” 지금 정치권이 딱 그렇다. 땡감 수준을 과일로 쳐주니까 진짜 과일인 줄 아는 국회의원이 많다. 이들을 보면 모기발에 워커를 신겨놓은 것 같이 어울리지도 않는다. 이렇게 나름대로 해석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결론은? 그냥 조용히 내 생각대로 가자!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