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세가 되면 해야 할 일

상처를 덜 받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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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소 주관적이다. 사람에 따라서 다르게 느낄 수도 있고, 반대의견을 내는 분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 수많은 사람을 컨설팅하고 멘토링하면서 느낀 바를 솔직하게 얘기해 보려고 한다.

55세. 고용이 안정된 직장인이라면 임금피크제에 들어서고, 창의력이나 기술이 필요한 직업이라면 퇴직 이후가 되는 나이 정도가 55세다. 100세시대로 따지면 불과 절반을 살짝 넘긴 아직은 청춘나이일 수도 있다. 하긴 시골에 가면 65세까지 청년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55세가 되면 이전과 몇 가지 달라진 느낌을 받게 될 것이다. 우선 연락 오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거슬린 행동들이 눈에 자주 띄고, 상처를 잘 받는다. 체력이 예전 같지 않다. 오랫동안 책을 보기가 어렵고, 깊은 생각을 하기가 쉽지 않다. 그 외에도 달라진 점은 아주 많다.

그렇다면 슬기롭게 늙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까? 다음의 7가지를 제안하고 싶다. 물론 이 점도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사는 환경이나 현재의 사회적 입지에 따라 다르게 와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피부로 느낀 바를 정리해 본 것이다.

단, 역량이나 재물을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나이 들면서 무엇보다 견디기 어려운 일은 상처받는 것이다. 상처를 받으면 처음에는 화가 나지만 나중에는 우울증으로 돌아온다. 나이 들어서 우울증은 쥐약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상처를 덜 받는 방법을 제안하려는 것이다.

첫째, 새로운 사람을 만나지 마라

55세 정도면 휴대폰에 최소한 수백명의 연락처가 있을 것이다. 돌아보면 그 사람들 가운데 70% 가량은 최근 1년간 한 번도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전화번호를 추가하는 기분은 날지언정 생산적인 만남으로 이어지기가 쉽지 않다. 서로 검증할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55세가 되면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신뢰하는 관계가 몇 명이나 되는지가 중요하다. 새롭게 만나게 되는 사람들은 당신의 역량을 보여줄 미래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해 예우에 소홀하다. 가당치 않은 표현이라 생각하겠지만 상대가 말은 안 해도 실제로 그렇다.

나는 연말이면 최근 1년간 연락이 없는 사람의 전화번호를 지운다. 48세 때부터 해 온 일이지만 그로인해 불편하거나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다. 조금 이른 시기부터 지우기 시작한 배경은 있지만 개인사라 일단 여기까지만…

둘째, 혼자 노는 법을 배우자

여의도에는 정치인이나 대기업 임원 출신들이 노는 마실방이 꽤 많다. 원룸이나 작은 사무실을 공동구입해서 공용사무실로 쓴다. 은퇴후 갈 곳이 없어서다. 그나마 공용사무실에 오면 다른 사람들과의 교제가 가능하고, 집이 아닌 다른 곳에 자리가 있다는 점만으로도 마음이 편하다고들 한다.

그런데 그마저도 자주 틀어지는 경우가 많아서 결국 혼자 남게 된다. 만일 혼자 노는 법을 배우지 않으면 이때부터 우울증이 찾아온다. 매일 배낭을 메고, 낚시를 가고, 친구를 만나는 것도 한두번이지 일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임금과 상관없이 누군가를 도우면서 일하는 소위 사회적 역할을 찾는 것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그래서 혼자 생산적으로 노는 방법을 찾아내야 한다. 지인 가운데는 벌을 치는 사람도 있고, 유튜버로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근육이든 머리든 자신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꺼리를 만드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

셋째, 클래식이나 미술에 관심을 가져보자

마음의 풍요(ripeness)를 느껴보라는 뜻이다. 대체로 나이가 들면 클래식을 듣던 사람도 ‘뽕짝’으로 돌아서는 경우가 많다. 향수 때문이다. 하지만 계속 듣다보면 지루하고 단조롭고, 때로는 우울감이 더해진다. 반면에 클래식을 들으면 그 깊이에 매료돼 위안을 찾는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고흐를 깊이 알게 되면 젊은 날 죽은 안타까움도, 청년기의 외로움도, 형제의 우애도 느끼지만 한편으로는 위안도 받는다. 고갱을 좆다보면 화려했던 젊은 날과 비교되는 이후의 삶, 때마다 그려놓은 자화상에서 인생을 다시 배우게 된다. 여유가 있다면 이들의 행적을 좆아 여행을 간다면 더욱 마음이 풍요로워 것이다. 그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희망을 쏘아 올리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넷째, 정치기사를 보지 마라

나이 들면 무엇보다 심리뿐 아니라 정서적 안정이 매우 중요하다. 정치 기사를 보면 화날 일 밖에 없다. 선택적 인권과 패거리 정치, 정제되지 않은 언어들에서 평안한 마음도 거칠어진다. 댓글이라도 한번 달면 계속 달게 되고, 갈수록 거친 표현을 쓰게 돼 마음이 수련되지 않는다.

정치 기사가 아니라도 읽을거리가 아주 많고 볼거리도 많다. 어줍잖은 정치 유튜버나 보고 있다면 인생이 아까울 것이다.책 사는 것도 부담된다면 EBS에서 좋은 프로그램들이 많다. 아니면 good news, 경제, 문화 등 시간이 없을 뿐 도움이 되는 글들은 아주 많다. 요즘은 번역기도 상당히 좋아져서 해외뉴스에만 집중해서 보는 것도 안목을 넓히는 계기가 된다.

다섯째, 떠난 회사의 직원 연락처는 지우자

퇴직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전직 근무처와 이리저리 연결하려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이는 공공근로로 다시 들어가 일하거나, 어떤 이는 브로커로 일하기도 한다. 또 어떤 이는 아웃소싱했던 ‘을’의 기업에 재취업하기도 한다. 그거 참 보기 안 좋다. 현직 직원들은 떠난 사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어쩌다 전화하면 한번은 밥 먹을지 몰라도 두 번째는 전화도 안 받을 것이다. 상처받을 일만 남는다.

따라서 전 직장 기반으로 주변을 빙빙 돌게 아니라, 전 직장에서 얻은 경험을 가지고 전혀 다른 곳에서 일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예컨대, 은행원이라면 금융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 방과후 교사로 활동하는 방법과 같은 류를 말한다.

퇴직자들 가운데는 새로운 직을 찾을 때 자꾸 전 직장의 연봉과 비교하려 든다. “내가 얼마를 받았는데, 겨우 이걸 받아?” 이런 식이다. 그런 생각일랑 아예 접어야 한다. 이 글은 40대도 볼텐데, 제대로 대우 받으려면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미리 역량을 쌓아가는 것이 좋다.

여섯째, 나이 따라 늙어가자

나이든 사람들은 다운에이징(down-aging)에 민감하다. 젊어지려는 욕구는 인간의 기본 욕구다. 그렇다면 젊어지려는 목적이 뭘까? 육체나이 40이면 40대와 동등한 일을 잡을 수 있을까? 아니면 그 세대와 소통이 더욱 원활해질까? 그도 아니면 연애라도 더 젊은 이성과 하게 될까? 아니다. 나이는 나이다.

더 아래 세대들이 당신을 대하는 태도는 젊어 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나이대의 사람과 다른 그 콘텐츠가 있을 때 예우한다. 그냥 나이에 따라 늙어가는 모습이 보기에 훨씬 좋다. 어린 세대와 놀고 싶다면 그들이 필요로 하는 콘텐츠를 만들면 된다. 아, 이렇게 반박할 수도 있겠다. “건강해야 오래 산다.”고. 그래서? 사회적 역할을 하지 않고 연명하는 삶이 과연 우리가 사는 가치일까?

마지막으로, 자서전을 쓰자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보다 자신이 살아 온 인생을 기록으로 남겨 보는 것은 참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자녀들에게 직접 하지 못했던 말도, 잊고 있었던 어느 순간의 아픔도, 잘 판단하지 못해서 고생했던 아픈 기억도, 잘해서 보상받은 환희도 모두 기록을 하다보면 지나온 날들이 나를 위안해 줄 것이다.

자서전을 쓰다보면 뜻하지 않은 영감을 얻어 또 다른 삶을 살게 되는 일도 있다. 게다가 글을 쓴다는 것은 뇌의 활성화, 커뮤니케이션 스킬 향상 등 부가적인 효과도 아주 크다. 정치기사에 댓글 달면서 괜히 혈압 높이는 것보다 자서전을 쓰면서 인생을 반추해 보는 시간이 얼마나 더 가치가 있는가는 더 비교할 필요도 없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