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에 대한 공포

내 일거수일수족은 어딘가에 모두 기록되는 것

0

집을 나가 엘리베이터를 타면 CCTV가 나를 바라보고 있다. 주차장에 내려서도 역시 CCTV가 나를 추적한다. 자동차 시동을 걸면 블랙박스에 기록되고, 출발하면 내비게이션이 내 좌표를 찍는다. 그것도 모자라 위성과 휴대폰을 통해 동선도 파악한다. 도로로 나서면 가는 곳마다 과속.방범 카메라가 차를 주시하고, 혹시나 빠뜨릴까봐 뒷 차의 카메라까지 주행상태를 기록한다. 목이 말라서 편의점에 들르면 신용카드가 내 좌표를 다시 찍는다.

이제 코로나가 나를 더욱 옥죈다. 마스크를 안 쓰면 10만원의 과태료를 내야하고, 다른 사람들의 살벌한 눈빛으로 공포심마저 들게 한다. 식당에 들르면 QR코드로 신분을 확인해야 하고, 결재하면서 또 다시 좌표를 찍는다. 길을 걷거나, 차를 타거나, 기차나 비행기를 타더라도 어디서 출발해 무슨 일을 하고, 어디서 내리는지 속속들이 안다. 일일이 열거할 수 없지만 이 정도면 내 일거수일수족은 어딘가에 모두 기록되는 것이다.

12월 15일, 부산에 사는 20대 여성은 보건소로부터 확진자와 접촉했다며 코로나19 검사 통보를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검사를 거부하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런데 방역당국은 불과 하루도 안되서 제주도에서 잡아냈다. 휴대전화도 꺼놓았는데도 말이다.

통제사회. 일반적으로 통제가 강화된다는 것은 개인보다 전체의 이익이 중요하다는 전제를 깐다. 권력은 ‘개인이 전체 속에서 비로소 존재가치를 갖는다.’는 주장을 근거로 국민생활을 간섭·통제하는 것이다. 그러한 통제사회를 전체주의라 부른다. 코로나가 없었더라도 더욱 강화되고 있던 차에 코로나가 와서 명분이 생겼다.

대표적인 전체주의는 중국의 문화대혁명, 일본의 군국주의, 독일의 나치즘이다. 우리가 배운대로 전체주의는 좋은 체재가 아니다. 4차산업혁명으로 통제의 전체성이 확보되고 있는 정치체제를 전체주의 체제로 나아가는 교두보 역할을 했다. 그러던 차에 코로나가 찾아와 더욱 선명해진 느낌이다. 물론 권력이 마음만 먹으면 쉽게 전체주의로 갈 수 있다는 뜻이다.

최근 해외에서는 두 가지 이슈가 주목을 받았다. 중국 광둥성의 한 공용화장실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안면 인식을 해야만 화장지가 나온다. 언제 화장지를 가져갔는지 시간까지 표시된다. 베이징의 한 택배함에도 안면 인식 기술이 적용돼 있다. 신원확인을 안하면 이제 택배조차 보낼 수 없는 것이다. 안면인식 장비는 중국 전역에 광범위하게 보급돼 있다. 아파트 출입은 물론, 지하철과 편의점 결제도 안면인식으로 가능하다.

미국에서는 코로나 백신에 대한 거부감이 확산되고 있다. 빌 게이츠가 백신에 칩을 넣어 인류를 통제하려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빌 게이츠가 백신을 주사하면 피부 밑에 칩을 넣는 새로운 기술을 개발했다는 것이다. 물론 음모론이지만 미국 성인의 28%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다.

이처럼 세계는 전체주의로 갈지도 모를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코로나에 대한 국제적인 협력을 모색하기 위해 국가간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서다. 게다가 코로나 바이러스가 가져온 폐해, 즉 격차, 빈곤, 차별, 대량소비, 제도 피폐, 신화화된 과학주의 등이 튀어나오고 있어서 이를 근거로 쉽게 통제할 명분이 생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개한 내용은 밖으로부터의 통제라 한다면, 지금부터는 ‘자발적 강제’에 대해 훓어보자. 온라인 세상에서도 비슷한 상황으로 가고 있다. SNS에는 자기소개란이 있다. 여기에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입력한다. 심지어는 집주소와 전화번호까지 노출한다.

게다가 어떤 기사가 뜨면 링크를 걸어 자신의 의견을 적는다. 어디 그뿐인가. 무슨 심리테스트 앱이 나오면 상당수 사람들이 스스로 동참해서 자신의 데이터를 공개한다. 어떤 SNS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성향도 드러난다. 내가 판단한 SNS별 키워드는 ‘인스타그램은 탐닉, 페이스북은 자랑, 트위터는 추종’이라 생각된다. 이 정도면 사용자정보는 속속들이 알 수 있다.

얼마 전, 한 연구 자료에서 “30개의 ’좋아요‘만 분석해도 정치적인 성향을 알 수 있고, 360개를 분석하면 성격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는 논문을 본 적이 있다. 사실 이 정도는 연구자가 아니라도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처럼 디지털에서는 강제하지 않아도 스스로 정체를 드러내 ’자발적 통제‘에 놓이려는 사람이 늘어난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이제 우리는 ’사이버 전체주의에서의 디지털 시민권’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된다면 틀림없이 모든 디지털 시민들을 점수화해서 일렬종대로 차등해 혜택을 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추세다 보니 ‘내 편’을 만들기가 아주 쉬워졌다. 이미 분석된 개인별 성향을 가지고 ‘듣기 좋은 말로 미화하면 그냥 따라오는 것’이다. 물론 데이터를 가진 권력의 얘기다. 그렇다면 “SNS에 기록을 남기지 않고 힛트도 남기지 않으면 되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

심리학에 ‘편견동조’라는 말이 있다. 침묵은 현재 사회에 형성된 편견에 동조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아도 어느 쪽으로든 동조하고 있다는 뜻이다. 현대를 다양성의 사회라고들 한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실제로는 ‘내편과 네편’ 뿐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위험한 사회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그것은 ‘나만의 정답’을 갖는 것이다. 세상이 정해 준 정답이 아니라 진정 ‘내가 생각하는 정답’ 말이다. 여기서 나만의 정답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성공이나 행복에 공식이 없듯이 ‘나만의 정답’에도 공식이 없다. 다만 남에게 해 되지 않고 자신을 지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을 나는 ‘가치’라 부른다.

앞으로 우리는 사이버 전체주의, 나아가 전체주의에 예속되지 않기 위해서는 물질이 아닌 가치를 우선으로 하는 생각과 행동이 필요하리라 생각한다. 하루에도 십수번 통제문자가 날아오고, 뉴스에서는 매일 같이 강제사항이 발표된다. 곧 끝날 것이라는 기대로 피로감을 이겨내지만 한편으로는 전체주의에 대한 공포도 함께 찾아온다.

언뜻 떠오르는 또 다른 생각. 급진 좌파학자인 시카고생 솔 알린스키(Saul Alinsky/1909~1972)는 사회주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다음의 8가지를 통제해야 한다고 했다. 첫째, 의료서비스다. 의료서비스를 통제하면 국민들을 지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둘째, 빈곤이다. 빈곤 격차를 최대한 높이면 가난한 사람을 통제하기가 쉽다. 그들에게는 복지라는 이름으로 생활의 모든 것을 공급해 주면 반항하지 않는다.

셋째, 계층 간의 간극을 높여라. 부자와 빈자를 갈라서 불만을 더욱 야기하게 하면 가난한 사람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어서 부자들을 장악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넷째, 부채를 최대한 많이 늘려라. 감당하기 힘들게 부채를 키우면 이를 배경으로 세금을 올릴 수 있다. 그 외에도 복지, 교육, 종교를 통제하고 총기소유 규제까지 더하면 완벽한 사회주의가 된다.

답답하고 우울한 하루가 또 지나간다.

이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