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방역의 허와 실

결과는 과거로부터 이어온 연속선상의 산출물

0

11일 밤, 대부분의 신문에 속보가 떴다. 김기덕 감독이 코로나19로 인해 사망했다는 뉴스였다. 김기덕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인 칸·베니스·베를린에서 수상한 유일한 한국 감독으로 국내외 영화계에서 ‘거장’으로 평가받은 인물이다. 그러나 2018년 ‘미투(Me too)’운동을 통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국내 활동을 중단하고 해외 활동을 이어오다 11일 라트비아에서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이다.

날이 새자, 대부분의 신문에서 코로나 신규 확진자 수가 사상 최대라는 토픽을 올렸다. 국내에서 처음 코로나 환자가 발생한 1월 20일 이후 327일 만에 최다(950명)를 기록한 날이었다. 요즘 하루는 코로나로 시작해서 코로나로 끝난다. 모든 행위에 코로나를 의식하며 살아간다.

대학시절 도강한 문화인류학 수업 중에 ‘사피어워프의 가설’에 대한 기억이 떠오른다. “어떤 외국어에 몰입하면 사고방식도 그 언어가 가진 문화로 바뀐다.”는 가설이다. 언어는 무의식 속에 투사된 내적 세계를 경험의 세계로 끌어올려 실제적 경험을 규정하는데, 이것을 다른 말로는 ‘강요된 관찰(forced observation)’이라고 한다.

사피어워프의 가설을 지금 적용하면 “코로나19에 몰입하니 생각이나 행동이 코로나19를 기준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생전에 모르고 지내도 되는 온갖 단어들, 펜데믹, 엔데믹, 위트코로나는 물론이고 아스트라제네카, 화이자, 얀센 등 백신이나 개발기업 이름, 국가별 의료체계까지 마치 예방의학을 공부하는 학생처럼 외우게 된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K방역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의 찬사를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초기에 방역을 잘해서 다른 선진국에 비해 감염률이 현저하게 낮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대통령의 지지도가 높았다. 그런데 이제 하루 1천명이 육박하는 상황이 되자, 그 명성은 공염불이 됐다. 따지고 보면 정부가 잘해서가 아니라 이전부터 잘 갖춰진 의료보험 시스템 덕분이다.

지금 미국은 매일같이 감염자 수를 갱신할 정도로 높다. 그 배경은 2002년에 제작된 미국영화 존큐(John Q)를 보면 의료보험이 취약한 미국의 의료제도를 적나하게 보여준다. 어느 날 주인공의 아들이 야구 게임 도중에 쓰러진다. 당장 심장 이식 수술을 하지 않으면 살아날 가망이 없다는 청천 벽력같은 소식을 듣는다. 그러나 가난한 존큐는 보험 혜택은 물론 정부 지원금도 기대할 수 없다. 아들을 살리기 위해 결국 자신의 심장을 주기위해 자살을 결심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내용은 20여년이 지난 지금의 미국 의료보험의 실상 그대로다. 미국의 메디케어는 선택적 복지다. 돈 낸 만큼 의료혜택이 주어지고, 그마저도 지정병원에서만 치료가 가능하다. 그래서 부자들은 민간보험을 들지만 이마저도 보험사와 연결된 병원 이외의 의료기관에서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은 어떤가? 1976년경 박정희 정부시절, 중앙정보보장 이후락이 비밀리에 북한을 방문했다. 그가 돌아와 북한은 전국민 의료보험을 하고 있다는 보고를 하지, 박정희 대통령이 즉각 시행하도록 지시해서 시작됐다. 벤치마킹은 일본에서 진행됐다. 지금의 행위수가 제도가 바로 일본식 시스템이다. 즉, 치료한 행위만큼 보험료를 지급하는 시스템이다.

지금처럼 전국민 의료보험은 2000년에 통합됐다. 그 이전에는 지금 연금보험처럼 공무원이나 교원의료보험 등 3가지로 나눠 시행됐다가 농촌의료보험을 마지막으로 통합해 오늘에 이른다.

결과는 과거로부터 이어온 연속선상의 산출물이다. K방역도 이전부터 계속돼온 의료보험 네트워크의 산물인 것이다. 어느 특정한 정부의 몫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제 K방역에 취해서 밖으로만 자랑할 게 아니라, 눈을 안으로 돌려서 국민의 안전에 더욱 더 노력해 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소아마비의 재생산지수는 백신 개발 전까지 4~6명이었고, 천연두는 3명이었다. 반면에 코로나19의 재생산지수는 1.3~1.5명이라고 한다. 이는 계절 독감인 플루(1명)보다 약간 높다.

너무 무서워만 할 게 아니라 스스로 방역수칙을 잘 지킨다면 이제 정부가 아니라 국민이 승리하는 진정한 K방역 브랜드로 거듭나지 않을까 싶다. ‘사람은 하루에 3천 번 얼굴을 만진다.’고 하니 의식적으로 얼굴 안 만지는 것부터 시작해 보면 어떨까?

이방인이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