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하는 방법

죽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삶에 자신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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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년 전, 법무연수원에서 법무부 직원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다가 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연명하는 삶은 살지 않겠다.”고 했다.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단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꾸역꾸역 사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삶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얄궂게도 한 직원이 손을 들더니 “그럼 언제까지가 사는 게 적당하다고 보느냐?”고 물었다. 나는 늘 생각했던 터라 가볍게 대답했다. “69세 정도로 예상하고 있다.”고. 이 강의 이후 법무부 강의요청은 다시 오지 않았다. 나중에 들으니 내가 했던 말이 위에 보고돼서 초청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감을 잡았겠지만 ‘자살’에 대해 말하려는 것이다. 사람은 정해놓은 날에 죽지 못한다. 자신이 정한 나이에 급사한다면 억세게 운 좋은 사람이겠지만 그런 운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결국 자살하는 방법 밖에 없다.

우리나라는 최근 10년간 하루 평균 38명이 자살로 죽는다. 40분마다 한 명 꼴이다. 2019년 자살자 수는 13,799명으로 1,000명당 26.9명이다.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다. 올 8월에만도 1,090명이 자살로 죽었다. 안타까운 점은 20대 사망 가운데 자살자 비중이 44.6%로 암보다 높다는 점이다.

최근 6개월간 자살자수_통계청

살면서 자살을 생각해 보지 않고 일생을 마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하지만 생각한다고 다 자살하는 것은 아니다. 생각이 바뀌었기 때문이겠지만 그보다 자살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오래 전, 미국에서 ‘자살하는 방법’이라는 책이 출간돼 화제를 모았다. 하지만 이내 ‘판금’됐다. 그 후 일본에서도 ‘완전자살매뉴얼’이란 책이 나왔지만 역시 판매가 금지됐다. 사실 나는 왜 판금됐는지 잘 알지 못한다. 최소한 내가 생각하는 자살에 대한 관점에서는…다행이 나는 일본 친구를 통해 중고서점에서 어렵게 책을 구해 지금 갖고 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자살하는 방법이 나와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뛰어내리기, 목매기 등에서부터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방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법들이 씌어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아주 편하고 쉽게 죽는 방법은 없다. 자칫 실패하면 후유증이 심각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살을 시도했다가 손발이 절단돼 살아가는 사례도 있다.

오래 전,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달아 놓은 댓글을 한 일본 사이트에서 보게 됐다. 그 댓글 몇 개를 소개해 본다.

“목을 매는 방법 이상으로 확실하고 쉬운 자살 수단은 없다.”
“아무리 좋은 방법이라도 주검을 보는 것은 흉하다.”
“삶이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이런 평을 내놓았다. 자, 여기까지는 그냥 자살에 대한 일반적인 얘기들이다. 그런데 조금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댓글이 훨씬 많았다.

“이 책이 왜 해로운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
“자살하려는 사람이 읽을 수는 있지만 책을 읽고 자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자살매뉴얼이라기보다 단편 르포를 한편 읽는 기분이었다.”

이처럼 자살 책이 자살을 유도하는 매뉴얼이 아니라 음식매뉴얼, 여행매뉴얼처럼 하나의 가이드북일 뿐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자살을 생각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살다보면 좋은 일도 많아요.” 혹은 “죽을 용기로 열심히 살아보세요.”라고들 위로 한다. 그들에게 이러한 말은 전혀 위로도 감흥도 없다. 마치 상을 당한 사람에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문자하나 달랑 날린 것과 다를 바 없다.

이제 “사람들은 왜 자살 책을 구입했을까?”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댓글러들은 기본적으로 자신에게 ‘죽을 권리’가 있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보면 ‘죽지 못해’ 살아야 하는 사람들을 너무나 많이 봐 왔다는 것이다. 나도 공감하는 부분이다.

젊은 나이에는 변화무쌍한 미래가 남아있어서 얼마든지 변신이 가능하다. 그래서 젊은이의 자살은 ‘희망’이라는 예방약이 있다. 하지만 나이가 많아질수록 그 이후 삶이 너무나 뻔하게 그려지기 때문에 변수가 별로 없다.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투표권이 유일한 권리다.

독자들의 댓글에서 가장 많이 달린 의견은 “예비지식으로써 안정감을 준다.”는 것이다. 심각하게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도 “언제든지 죽는 방법을 알기 때문에 오히려 삶에 자신이 생긴다.”고 썼다. 자살을 죄악시하는 것보다 오히려 ‘자살할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자살을 줄이는 방법이 아닐까 싶다.

조력자살 관련 기사 http://www.sisajournal.com/news/articleView.html?idxno=208218

이방인